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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키스만 50번째 

50 FIRST D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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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 99분

#로맨스 #코미디

일본 오키나와에서 료칸 매니저로 일하던 엔야 시게토. 같은 동네에서 스쿠버 다이빙 강사로 일하는 나루세 렌에게 첫눈에 반하지만 나루세는 다음 날 그를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사실 그는 매일 아침 교통사고 있었던 날로 돌아가는 단기 기억 상실증에 걸렸던 것. 엔야는 매일이 자신과의 첫 만남인 나루세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는데. 두 사람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Catch Feelings

 

 

반투명한 카약의 몸체가 바닷물 아래로 살짝 잠겨 물 아래로 볼록한 배를 내밀고 있다. 유연한 고무로 된 노가 서툴고 느린 궤적을 그리며 물살을 가른다. 나루세는 스노클의 마우스피스를 고쳐 물고는 카약을 타고 있는 손님들의 곁을 헤엄쳐 지나간다. 카약 체험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장애물이 없는 바다는 열대어와 산호초를 보기 힘들다. 수심이 얕고 암초나 해초지대가 있는 곳이 열대어를 보기에 가장 적절하다. 그가 오늘 바다로 데리고 나온 손님은 초보자이니 이왕이면 물결도 거칠지 않은 곳을 찾고 싶다. 나루세는 익숙하게 해수면 아래의 풍경을 눈에 담으며 뒤따라오는 손님에게 손을 내민다. 초보자의 경우 스노클링을 하다 보면 자신이 해안선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졌는지 인지하기 힘들어 나루세처럼 바다의 지리를 잘 아는 직원과 2인 1조로 움직이는 것이 안전하다. 그는 손을 내민 채 인적이 드문 포인트로 이동하겠다는 수신호를 보낸다.  낯선 얼굴의 손님은 반 박자 정도 느리게 나루세의 손을 잡는다.

따가운 여름 햇살이 두 사람의 등 뒤를 데우고, 수면 아래를 메운 하얀 모래 위로 흐물거리는 그들의 인영을 반투명하게 그려 넣는다. 구불구불한 그림자 두 개가 느리게 가로 질러 도착한 곳은 해안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검은 암초가 모여 있는 포인트다. 검은 암초 위로 백사장을 닮은 온화한 색의 산호초와 맑은 하늘을 닮은 푸른 색의 산호초가 두 사람의 시야에서 들판처럼 넘실거리고, 산호초 사이로는 형형색색의 열대어들이 떼를 지어 헤엄친다. 그들의 생명력 넘치는 움직임을 흐뭇하게 보던 나루세는 열대어들이 놀라 달아나지 않도록 손님의 손을 천천히 이끈다. 이내 그의 투명한 스노클 고글 위로 알록달록한 해양 생물들의 모습이 비친다. 그는 연푸른 눈으로 나루세를 바라본다. 나루세는 그와 눈을 맞추고 있다가 수중에서도 빈틈없이 맞물린 그와 제 손을 내려다보며, 한 사람의 온기를 나눠 받는 것만으로도 차가운 수온에 둘러싸여 있던 손가락이 따뜻해질 수 있음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더운 햇살 때문인지 마우스피스를 통해 빠져나가는 숨이 덥다.

 

 

나루세는 오늘 스노클 체험을 하러 온 손님의 얼굴을 익힌 것도, 그의 이름이 엔야 시게토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겨우 반나절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와 만나고 연애를 한 것은 그보다 오래 되었다. 아침에 TV를 통해 재생된 〈 おはよう〉라는 제목의 비디오 테이프에 의하면, 나루세는 반년 전에 엔야와 해변이 잘 내다 보이는 브런치 카페에서 만났으며 사귀게 된 것은 약 3개월 정도가 되었다. 엔야라는 남자는 그때부터 거의 매일 같이 서로의 얼굴을 보며 지냈다고 말했다. 나루세는 낯선 료칸방 한 구석에 놓인 TV 앞에서, 환한 미소와 함께 엔야의 이름을 부르는 낯선 제 얼굴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던 오늘 아침의 일이 아직도 생생했다. 사고로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렸다니. 나루세는 이 충격적인 사실조차도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전부 없던 것처럼 말끔하게 사라질 것이라는 말을 여전히 믿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그와 스노클링 체험을 마치고 료칸의 고즈넉한 평상에 함께 앉아 손을 맞잡고 있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까지는 부정할 수 없다. 료칸의 낮은 돌담 너머로 하얀 거품이 해안선을 따라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 나간다. 하얀 거품 대신 낯선 향의 공기가 밀려와 씻고 나온 나루세의 피부를 말린다. 엔야는 스노클링을 위해 피어싱을 잠시 빼둔 것이 허전한지 귓불을 조금 만지작거린다. 나루세는 바닷가에서 묻혀 온 소금기가 슬리퍼의 한 구석에 말라붙은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머리칼에 매달린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도록 내버려둔다.

“……저기, 비디오 테이프… 그거 만들기 전에도 날 만났다고 했잖아.”

엔야의 시선이 나루세에게로 향하자 바닷바람이 나부껴 두 사람의 머리칼을 흩어 놓는다. 엔야는 침묵한 채 고개만 작게 끄덕인다.

“그걸 만들기 전에 너랑 나는 어떻게 매일 만날 수 있었던 거야? 우린 직장이 겹치는 것도 아니고….”

넌 분명 내 앞에서 매일 새로 만나는 사람처럼 연기해야 했을 텐데. 나루세는 뒷말을 삼킨 채 엔야의 푸른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본다. 그는 엔야라는 사람을 알게 된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가 본 바에 의하면 엔야는 말수가 많지도, 말재주가 특별히 좋지도 않은 서투름이 많은 사람이었다. 연애를 목적으로 능청스럽게 누군가에게 다가설 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저 역시 누군가를 좋아하고 연애를 시작하는 스스로를 좀처럼 상상해 본 역사가 없었다. 나루세는 매일 같이 서로를 만나 관계를 진전시키는 두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기 어려웠다. 엔야는 시선을 내린 채 맞잡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 손을 잡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 사람처럼.

“스노클링 체험을 하러… 자주 왔었어. 직접 예약하러 가면 누가 체험할 때 가르쳐 주는지 스케줄표에 나오니까…….”

“아, 그렇게…. …몇 번이나?”

“일 때문에 매일은 아니고… 평일에 세네 번 정도씩… 세 달.”

직장도 있으면서… 정말 자주 왔네. 민망하지만 어느 정도 만남의 과정이 이해가 된다는 듯 끄덕이던 나루세의 고개가 별안간 뚝 멈춘다. 둥근 갈색 눈동자가 커진다. 별안간 그의 머릿속으로 익숙하게 피어싱을 빼 두고 스노클 장비를 끼던 엔야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그 일련의 행동들이 수많은 스노클링 경험을 통해 몸에 밴 습관처럼 자연스러웠다는 것도.

“그런데 왜 오늘 초보자 코스로 가야 한다고 한 거야? 그렇게 많이 해봤으면 너… 꼭 초보자용 체험만 할 필요는 없는 거잖아. 더 예쁘고 깊은 곳으로 가도 되는데…….”

엔야는 맞잡은 손을 움찔 떨기도 잠시, 여전히 시선을 내린 채 입을 연다.

“……처음 체험이 끝나고 너랑 점심을 먹으러 갔었어. 그때 네가 물속에서 보여준 것들이 뭐였는지… 더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고.”

주황색 바탕에 희고 검은 줄무늬가 있는 흰동가리돔은 〈니모를 찾아서〉라는 영화의 주인공인 니모의 친척쯤 되는 물고기라는 것. 바다거북은 육지거북과 달리 앞다리가 지느러미 모양으로 되어 있어 바다 속을 자유자재로 누비고 다닐 수 있다는 것. 검은 띠가 있는 줄가자미는 빛을 받으면 은빛으로 비늘이 반짝인다는 것. 초보자들은 해안선으로부터 얼마나 바다 쪽으로 밀려왔는지 알지 못해서 2인 1조로 손을 붙잡고 움직이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 그 다음에 다시 그와 함께 바다 아래로 고개를 밀어 넣었을 때, 엔야의 눈에는 분명 더 많은 것들이 보였다. 흰동가리돔의 움직임을 보고 니모를 떠올리듯 피식 웃는 얼굴을, 넓적한 앞다리로 유영하는 바다거북을 관찰하는 시선을, 비늘을 빛내는 줄가자미 위로 그림자가 지지 않도록 몸을 트는 세심한 움직임을. 스노클링 경험이 전무하다 여겨졌을 제게 그들의 생태를 한껏 눈에 담을 수 있도록 느리게 오리발을 휘저으며 오랫동안 제 곁에 머물러 주는 배려와 현란한 열대어와 산호초의 향연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도록 마주 잡아주는 두 손의 투명한 온기를. 나루세와 수면 아래에서 눈을 마주칠 때면, 마치 그가 매일 몸을 담는 미야코지마의 수면 아래에 저 역시 녹아 들어 그의 일상 속에 제 존재를 남길 수 있을 것만 같다고, 엔야는 늘 생각했다. 엔야는 장황하게 잇던 말을 잠시 멈추고 나루세의 손을 한층 더 꼭 붙잡는다. 그의 귓가가 발갛게 물든다.

“…초보자 코스로 가면, 그 상태로 더 오래 있을 수 있으니까…….”

변명을 다 들은 나루세는 벙찐 얼굴로 엔야를 올려다보지만 이윽고 볼이 붉게 익는 것을 느낀다. …바보 같네. 그와 동시에 엔야와 자신의 관계가 이곳까지 흘러오게 된 경위를 예감한다. 진솔하다 못해 투명하다고 느껴질 만큼 직설적인 고백과 놓고 싶지 않다는 듯 맞붙잡은 손, 그 이상 더 다가오지 못하는 어리숙하고 엉거주춤한 움직임까지 전부, 바닷속 풍경을 바라보듯 훤히 보였으므로. 그것에 휩쓸리지 않을 자신이 제게는 없었으므로. 나루세는 잡고 있던 손을 제 쪽으로 당긴 채 허리를 꼿꼿하게 편다. 몸이 당겨진 엔야는 숨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저를 올려다보는 나루세의 눈을 숨을 참은 채 응시한다. 나루세는 시선을 곧게 맞추다 작게 속삭인다. 그의 속삭임을 따라 입술이 스친다.

“……. …전에 내가 이렇게 한 적, 혹시 있어?”

엔야의 시선이 느리게 나루세의 콧등 아래로 떨어진다. 짧은 정적이 흐른 뒤, 엔야는 눈을 내리깐 채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다.

“처음, 이야….”

적도를 달군 뜨거운 바람이 망망대해를 건너, 료칸의 돌담을 넘어, 입술을 맞댄 연인의 몸을 두드린다. 더운 기쁨이 몰려오는 와중에도 두 사람은 맞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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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 정보

출연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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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세 렌

Naruse Len

양치, 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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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야 시게토

Enya Sige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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