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 11일
그 사진관에는 의자가 셋 있었다. 정확히는 소파 하나와 일인용 의자 두 개였다. 소파는 먼저 온 노인들의 차지였으므로 태현은 그 앞을 비켜 남은 의자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익숙하게 등나무 의자에 앉았다. 남은 의자의 합성 피혁이 이런 여름에 얼마나 끈적거리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지나치게 더운 여름이었다. 사진관에선 끝없이 선풍기가 돌아갔지만, 눅눅한 공기를 몰아내긴 역부족이었다. 노인들은 검은 비닐봉지를 손목에 걸고 계속 땅콩을 까먹었고, 동시에 여러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태현은 굳이 귀 기울이지 않았다. 곧이어 됐다는 신호와 함께 아이 하나가 튀어나왔다. 며느리로 보이는 여인이 뒤늦게 나와 아이 돌 사진에 대해 무언가 주문을 넣었다. 안경을 낀 노인 쪽이 말을 멈추고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그럼, 보름 뒤에 액자 찾으러 오세요.”
사장의 말에 만족한 듯 며느리는 웃으며 노인들을 부축했다. 아이는 벌써 한복 윗도리를 벗어젖히고 있었다. 나일론 저고리가 여름의 햇살 아래 팔랑거렸다. 사장은 손님들이 나간 후에도 문을 열어 두었다.
“덥죠?”
“이거. 오늘 안에 될까요.”
사장이 태현의 손에서 봉투를 받아 갔다. 필름 몇 장을 꺼내보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시선은 태현의 근무복 쪽으로 넘어갔다. 어쩐지 태현은 단지 얼마 안 된 무궁화 봉오리 계급장까지 힘이 들어간단 생각이 들었다.
“파출소 일인가요?”
“네.”
“어디에 써요?”
“실종자 접수라 여기저기.”
“아.”
유리 데스크에 필름을 올려두고 들여다보던 사장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오늘 바로 필요해요?”
“어려울까요. 큰 데 가야 하면 가겠지만.”
“아뇨. 돼요. 그런데 오늘 가게가 더워서요. 어디 시원한 데 있다가 오시라고.”
“얼마나 걸리길래요?”
“두 시간?”
“두 시간.”
태현은 기다리겠노라 고개를 젓고 다시 등나무 의자에 앉았다. 체중을 기대니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긴 했지만, 이 사진관에서 제일 시원한 의자였다. 잠시 벽에 걸린 액자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얼굴에 바람이 닿았다. 안쪽 방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온 사장이 선풍기 방향을 돌려놓고 들어간 듯했다. 서서히 해가 기울며 바깥의 바람도 조금씩 식고 있었다. 점심시간을 아껴 나왔으니. 그보다는 오늘 안에 해야 하는 일이지, 몇 시까지 돌아오란 말은 없었으니까. 태현은 잠깐 눈을 감았다. 데워진 눈이 식는 기분이 들었다.
척, 뺨에 닿은 차가운 것이 잠을 깨웠다.
옆에 앉은 사장이 일부러 소리 내서 웃었다. 손에 들린 더위사냥이 보였다. 익살맞은 장난인 척했으나 본인이 더 겸연쩍어 보였다. 사장은 아이스크림을 반으로 갈랐다. 큰 쪽이 태현의 몫이었다.
두 사람은 잠시 나란히 앉아 커피 맛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몇 번 와본 태현도 지금이 무슨 공정일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인화지를 건조하는 동안 사장은 증명사진의 규격을 맞아 잘라 정리하거나, 필름을 정리하기도 했다. 이번처럼 앉아서 옆에 앉아 말을 건 것은 처음이었다. 아이스크림의 곽을 꾹꾹 눌러 밀어 올리던 사장이 말했다.
“몇 번 오셨죠?”
“아. 네.”
“실종자면 여기에도 사진을 붙여두는 게 나을까요?”
“그것보단… 전단 나오면 가져다드릴게요.”
“그게 좋겠네요.”
할 말을 찾는 걸까? 그러나 침묵도 잠깐. 사장은 일어나 안쪽 방으로 돌아갔다. 내부에서 들리는 기계 소리도 멎었으니 슬슬 돌아갈 때가 다가온 것이었다.
태현은 앉은 자리에서 데스크로 팔만 뻗었다.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끄트머리가 닿았다. 사장 이름은 차서원이었다. 그러고 보니 간판에 이런 글자가 들어갔던 것 같기도 하고.
7월 26일
동전 던지기로 특진자를 고른 데가 있다던데. 순찰차를 세워 놓고 동기가 그런 소리를 했다. 태현은 처음에 웃기는 소리 말라고 일축하려 했으나, 동기가 징계한 감봉까지 세세하게 대답하자, 어쩐지 그럴듯하게 들렸다.
누구는 드라마 좀 그만 보라 할 소리겠지만. 태현이 근무하는 서만 해도, 특진하려면 강도범이든 흉악범이든 잡는 게 보통이었다. 보통은 실종 아동 수색을 찾아 골목과 공터를 확인하고 학원 땡땡이 범을 찾아 잡아다 주는 일과로는 안된다는 거였다. 태현은 특별히 진급에 욕심은 없었지만,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이야기를 들으면 자연히 늘어나는 꽃봉오리 같은 것을 떠올려 보았다.
싱거웠다. 베어 문 김밥은 그새 순찰차에 두었다고 조금 뜨뜻미지근해져 있었다. 그때 동기가 옆구리를 쿡 찔러왔다. 저기 사진관 아저씨 가네. 태현은 고개를 들었다. 사이드 미러에 멀지 않은 거리가 비쳤다. 마트 앞에 스쿠터가 한 대 서 있었고, 봉투를 팔에 걸고 나온 서원이 서 있었다. 헬멧을 쓰려는 모양이었다.
태현은 차에서 내렸다. 따가운 볕이 정수리로 쏟아졌다. 잠시 뛰어가려던 태현은 멈춰 머리를 넘겨 모자를 썼다. 이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눈가에 그늘이 지니 땀자국도 가려질 거고.
가까이 다가가도 서원은 고개를 들지 않고 팔에 건 비닐봉지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태현도 함께 고개를 내밀었다. 연두색 십자가와 약국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약 봉투네요.”
서원이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조금 소스라친 것 같지만 태현을 보자 바로 웃었다.
“아…. 병원 다녀왔어요.”
“아파요? 여름 감기?”
“그건 아니지만.”
서원이 멋쩍은 표정으로 비닐봉투 밑에 깔린 다른 걸 들어 보였다.
“여기 아이스크림도 있는데.”
“제 거예요?”
왜 그것부터 보냐는 빈축 같긴 했지만. 태현은 농담으로 받았다. 선선히 네, 라는 대답이 들려온 건 뜻밖이었다. 그래서 괜히 할 말이 없어졌다. 손에 들고 있던 종이 봉투만 몇 번 만지작 거렸을 뿐.
“순찰 중이에요?”
“겸사겸사.”
“일 중이면 바쁜 거 아닌가.”
“있다가 이거 맡기러 갈게요. 그… 뺑소니 같은 거.”
“뺑소니?”
서원의 표정이 삽시간에 심각해졌다. 사람도 죽었어요? 아니. 그건 아니다. 우그러진 범퍼를 다른 각도에서 찍어둔 것들이었으니까. 그렇게 심한 건 아니었지만 태현도 갑작스레 마음에 의무감 같은 게 들었다.
“완전 급한 거죠.”
“지금 뽑아야 되겠네. 있다가 와도 돼요? 손님 오면 밀릴 텐데.”
“안되죠. 급한 건데.”
서원이 먼저 스쿠터에 올랐다.
“지금 가죠.”
차에서 내린 거 못 봤나봐. 태현은 흘긋거리며 순찰차 쪽을 보았다. 아무래도 선팅이 짙게 되어 내부가 보이진 않았다. 괜찮겠지…. 태현은 슬그머니 스쿠터의 뒷자리에 탔다. 서원이 잠시 기다리다가 답답했는지 태현의 팔을 끌어다가 허리에 두었다. 여름 셔츠는 살갗에서 떨어지기만 하면 식었고, 팔목에 면이 닿자, 어쩐지 서늘했다.
“가죠.”
스쿠터가 경찰차를 앞지르는 동안 태현은 그쪽을 보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김밥을 먹는 동기의 시선이 와 닿는 게 느껴졌다.
모른 척 눈 감으며 태현은 몸을 더 붙였다. 스쿠터는 두 사람분의 무게를 지탱하느라 덜덜 떨렸고, 그러다 보면 품에 넣어둔 종이 봉투에서 필름이 날아갈지도 몰랐으니까. 그 밑에 눌러둔 놀이공원 티켓 두 장이 날아가면 더 큰 일이고.
7월 29일
티켓은 날아가지 않았지만 전해지지도 않았다. 그냥 들렸다고 하자 서원은 커피나 더위사냥 대신 캔맥주를 꺼내 왔다. 그리고 비장의 무기처럼 커피땅콩을 꺼내 놓았다. 태현은 자신은 커피만 먹고 살지 않는다고 하려다가 말았다. 뭐라 말하기도 전에 서원이 오징어에 땅콩을 감아 먹여버려서 그것부터 씹어야 했다.
8월 10일
파출소에서 서원을 만난 이후로 사진관에서 맥주는 나오지 않았다. 서원은 커피는 꼭 티스푼으로 저어서 주고 자신은 현미녹차를 마셨다. 서원이 일기를 쓰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날 처음 들었다.
“많이 바빠?”
“그런 건 아닌데.”
“사장님은 다 휴일은 자유롭게 쓰는 줄 알았지.”
“그런 게 있어. 그래도 16일은 돼.”
“일기 쓸 거 생기겠네.”
서원은 한 번 웃고, 아까 이야기하다 만 고등학교 수련회 이야길 이어 갔다. 태현은 가끔 이야기를 들으며 눈앞의 사진관 사장과 이런저런 사연을 연결해 보았다. 아무래도 어렸을 때는 성격이 있었던 것 같아….
8월 16일
아이스크림 녹은 자국이 여태 보였다. 아예 옷에 배어들어서 빨기 전까진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가로등 불빛에 셔츠 끝단을 비춰보다가 태현은 한숨을 쉬었다. 기름얼룩은 오래 가는데. 손으로 몇 번 문질러 보았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때마침 화장실에서 나온 서원이 잠시 멈춰서 손등을 바라 보다가 돌아왔다. 한쪽 손등을 쥔 채였다.
“이거 안 지워지는데.”
아. 롤러코스터 앞에서 애들이 줄서서 받길래 떠밀었던 그거다. 태현은 낮의 광경을 떠올리고 웃었다. 중학생들 사이에서 영문도 모르고 서원은 손등에 스탬프를 받아 왔다. 이상하면 돌아오라고 했더니 그런데도 줄을 섰다. 그 동안 이쪽과 도장 찍는 사람을 좀 많이 번갈아 보긴 했지만.
“그 도장 다 모아서 보여주면 뽑기할 수 있었는데. 1등상 무슨 여행권이라던데.”
“해야 했나?”
“이미 나왔으면서 뭘. 다음에 해.”
“그래도.”
“다음에 해.”
서원은 듣지 못한 듯 손등을 몇 번 더 문질렀고 태현도 무심결에 그리로 손을 뻗었다. 엄지로 쓸어보니 일어난 살을 따라 열기가 느껴졌다. 서원이 손을 뺐다.
“가자. 그냥.”
이미 폐장에 가까운 시간에 나왔고, 밥까지 먹었더니 길은 어두워져 있었다. 둘은 끝없이 이야기 했다. 놀이공원에서는 탈 수 있는 놀이기구와 못 타는 것에 대해, 멀미가 일어나 토하고 온 서원에 대해, 지나가던 아이에 대해, 스탬프에 대해, 불꽃놀이를 볼지, 말것인지에 대해, 태현에게 티켓을 준 수수께끼의 지인에 대해. 식당에 이르러서는 시간이 늦어 대부분 문을 닫은 것. 들어간 국밥집에서 소주와 맥주를 시킬지 말지. 서원이 파출소에서 부린 주사. 그걸 듣고 또 서원이 태현에게 던진 생마늘. 그 다음에는 각자 지워지지 않는 얼룩에 대해 고민했고 계속 걸으면서 이야기 했다. 방금 지난 나무가 금목서인지 아닌지에 대해. 일기를 편지처럼 쓰고 있단 이야기. 그렇게라도 안 쓰면 며칠은 걸러버린단 것. 다시 맥주로 주제가 넘어가 파출소에서 자느라 뺨이 눌렸던 서원부터, 태현이 커피만 좋아하지 않는다고 오해를 풀려던 노력들. 서원이 웃다가 결국 힘이 빠져 나중에는 근처 화단의 경계석에 앉아 걷지도 않고 이야기를 했다.
서원의 곱슬머리는 가볍게 머리 위로 뻗쳐 있었다. 이야기 하는 도중 오늘 몇 개나 바꿔쓴 필름 통 하나를 손에서 굴리며 노는 버릇이 보였다. 문득 이번에는 서원이 말했다. 짐 가방에서 필름 카메라를 꺼내며. 오늘 하루종일 생각한 것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이. 툭.
“눈썹은 짙은 게 좋아.”
“응?”
“사진 찍을 때 잘 나오거든. 사람들은 보통 얼굴을 볼 때 눈을 먼저 보니까. 너처럼 짙으면 눈도 잘 보이고, 시선도 오래 가지.”
말이 없더라니. 그런 걸 보고 있었나. 거기까지 말하고 서원은 새로 사진을 찍으려는 듯 카메라를 들었다. 하지만 이쪽에서 봐도 화면이 비켜 나가 있었다. 태현이 움직이려 하자 서원은 고개를 저었다. 그대로 있어.
“그냥 이렇게 풍경처럼 흘러가는 걸 찍으려고.”
그래서 태현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그 바람에 머리가 부슬거리며 일어났단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공기는 어느새 습해져 있었고.
빗방울이 떨어졌다. 서원은 뛰지도 않고 먼저 급하게 셔츠를 벗어 카메라를 감쌌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멈추고 달렸다. 하루 동안 처음으로 이야기가 끊겼다. 하필 비를 피할 정류장에도 태현이 탈 버스가 도착해 있었다. 인사도 못하고 태현은 사진부터 말했다. 닫혀가는 문 너머로. 사진 보내줘야 해. 나오면 꼭 전화해.
12월 24일
아주 오랜만에 순찰차가 사진관 앞에 섰다.
잠시 사이를 두고 차 문이 열렸다. 쌓인 눈이 몇 번 녹고, 내린 후에 또 지워진 터라 도로는 영 깨끗하지 않았다. 그나마 사진관 처마 밑이 소복하게 쌓인 눈으로 깨끗했다. 태현은 손에 든 소포를 한 번 내려다보았다. 한 번 뜯은 자국이 있는 소포에는 사진관 주소가 적혀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사진관 문은 잠겨 있었다.
여름에도, 가을에도 들여다보았던 때처럼. 소파 위에는 짐 상자 몇 개가 놓여 있고, 의자 둘은 흐트러져 있다. 벽면에 걸린 액자들도 그대로였다. 태현의 입김이 가닿은 창이 부옇게 변했다. 그 탓에 안은 더 보이지 않았다. 태현은 더 들여다보기를 포기하고 소포를 다시 열었다. 이미 외운 내용물이었다. 필름 몇 개와 종이봉투에 쌓이고 끈으로 칭칭 묶인 사진들이 있었다. 사진들이 많았다. 찍는 사람이 고정되어 있었으니, 대부분이 태현의 사진이었다. 그제야 태현은 언젠가 이 사진관에서 증명사진을 찍었단 기억을 떠올렸다. 서원은 초점을 맞추다가도 몇 번이나 돌아와 앞머리와 옷깃을 정리해 주었다. 꼬리빗의 끝으로 조금씩 머리카락을 넘겨 눈썹이 잘 드러나게 고치고, 눈을 보았다. 그러다가 멋쩍은 표정으로 손끝을 비비며 카메라 뒤로 돌아가곤 했다.
그것도 있을까? 태현은 소포를 든 채로 다시 종이봉투를 열어 사진을 한 장씩 넘기기 시작했다. 정말 사진을 보내줄 거였다면 일기를 보내달라고 할 걸 그랬나. 어차피 편지처럼 쓴 일기라면. 사진은 한 장, 두 장 넘어갔다. 8월로. 천천히.





